도자녀 dearest


 많은 독자 여러분께서 이미 전해 들은 것처럼, 나는 수개월 전부터 예술학과에 출석하고 있다. 어느 수업에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정확히 말하면 딱 두 명 데면한 사람만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아니, 그들을 포함한 전원이, 나에 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은 탓으로, 내가 앉은 자리 인근은 항상 비어 있어, 내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씁쓸한 감상이 꼬박 한 주에 세 번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건조한 나는, 수업 전이나, 쉬는 시간이 오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주변을 관찰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C804 예술행정론 수업 시간을 통해 관찰한 것이다. 수업이 시작인 11시 직전의 학교는, 하루 중 가장 붐벼, 엘리베이터 줄이 건물 입구까지 늘어지기 일쑤다. 나는 매번 아슬아슬한 시간이 돼서야, 강의실 뒷문을 열고 숨을 돌린다. 수강생들은 대체로 같은 자리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꽤 낯익은 사람도 제법 생겼는데, 내가 선호하는 뒤쪽 창가 자리는, 꽤 인기가 좋은지, 일찍 오지 않으면 차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나는, 매일 벌어지는, 이 시시한 경쟁 과정에서, 매번 같은 자리에 앉는, 한 고풍스러운 학생을 찾아냈다. 고상하다. 그래서 나는 그 소공녀를 도자녀라 칭하려 한다. 왜 도자녀냐 하면, 그 인상이 마치 원대元代 경덕진요景德鎭窯를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천 년 전 동양의 청담한 아름다움을 연상할 만큼, 지극한 분위기를 날개옷처럼 두른 그는, 매번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게으른 나와 달리 꽤 바지런한 성격인 듯 하다. 교재 외에 지닌 책 등을 통해 유추하면, 나처럼 타과에서 와, 이론 공부를 하는 듯 하다. 아마도 미대생. 내 선입견에 따르면, 대체로 그런 훌륭한 외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인의 넥타르인 더블샷 아메리카노로 연명하고, 이따금 그것이 지루해질 때면, 암브로시아 대신 현대인에게 허락된, 크림 펜네 파스타 등을 조금씩 뜨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한데, 그는 퍽 소탈한 성향인지, 혹은 너무 배가 고파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불로불사에는 관심 없는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탓인지, 수업 시작 전 항상 비닐에 쌓인 김밥이나 검은 빵을 조금씩 삼키며, 아마도, 예습에 몰두하는 것이다.

 관찰이 시작되자, 다른 장소에서도 그가 눈에 들어왔다. E103 예술학사 수업 시간에도 출석하는 그는, 대체로 지독하게 우아한 학생들이 지극히 추상적이며 현학적인 논쟁에, 열정을 다해 몰두하는 가운데, 홀로 고고하게 지정석을 지키고 있다. 그는 고학생이 아니다. 그것은 주 단위로 조금씩 변화하는 계절에 맞춰, 의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좋은 물건임이 분명한, 가방이며 구두 역시, 매번 어울리게 바뀌었다. 그런 그는, 꽤 공부에도 재능이 있는지, 역시 E103에서 진행되는 중국미술사 중간고사 결과 발표된, 고득점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타과생에게 예술학과의 수업은 무척이나 불친절하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의 노력과 그 성과는 대단히 훌륭한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면, 나의 성적은, 그저 그렇다. 백분위로 따지면, 80점 정도. 나는 그래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이 관찰을 이어갈수록, 박탈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그것의 원인은 불평등일까? 혹은 단순히 재능의 차이, 혹은 노력의 차이가 잉태하고, 상대평가라는 제도가 낳은 결과물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마, 이쪽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내가 그저 결과에 불만족하여, 그것을 외부 요인을 탓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적 현상일까? 나는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불평분자에 불과한 걸까? 매주 주말, 22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생활비를 벌 수 있고, 고단한 상태로 눈을 비비며 도판을 외우는 내가, 효율적인 학습에 전념할 수 있는 경쟁자들을 이기고, 고득점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도자녀를 향한 나의 감정도,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