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dearest

12시 40분

 종무식이 끝나고 곧바로 연회가 이어졌다. 매일 들락거리던 구내식당에서 연회라니 썩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막상 길게 늘어선 줄 끝에서 조금 살펴보니 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갖춘 뷔페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 야외 행사를 했을 때처럼 신경을 쓴 모양이다. 종무식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떠나는 마당에 더이상 나와 상관 없는 연회가 어디서 벌어지든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업무 인수인계서 작성과 개인정보 삭제, 물품 정리 등 언제 나가도 괜찮을 만큼 퇴사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이미 마음은 회사를 떠났고, 몸도 최대한 빨리 추스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같이 인턴하던 아이들과 함께 푸념이라도 나눴을 텐데 절반은 이미 여름에 퇴사했고 또 다른 절반 중 일부도 각자 스케쥴이 달랐던 탓에 하릴없이 그동안 살갑게 대해줬던 직원 몇 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것이다. 한 접시 담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자리가 불편해서 체할 것 같았다. 그냥 모든 것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헤어지는 순간이 어색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마지막 날이 되니 아쉬움도,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빠트린 것은 없나 꼼꼼하게 살폈다. 이내 식사를 마친 부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무실로 돌아왔다. 차례로 작별인사를 나눴는데, 이 순간만큼은 잊고 있었던 석별의 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한 해 동안 부족한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생활했던 분들이고 나는 그분들께 많은 것을 배웠다. 비단 업무 측면에서뿐 아니다. 아마 앞으로 살면서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고 1년간의 인턴 생활이 어떤 변화로 이어졌는지 하나씩, 새삼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부족했을 것이 뻔한 나를 이끌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손을 맞잡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는 순간에서야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한다.

 오후 한 시가 채 되지 않은 한적한 시간, 평일 낮의 삼청동은 한산하다. 순순히 집으로 돌아가자니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념에 차 골목을 배회하며 안국동 풍문여고 앞까지 걸었다. 매일 생활하던 곳이지만 대낮에 삼청동을 걷는 여유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으니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문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는 포상은 고작 탕수육이나 돼지갈비같이 소소한 먹거리였고 게다가 혼자서는 못 먹는 음식뿐이다. 상 같은 것은 전부 사치라며 도리질을 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끔 걸어서 퇴근할 때면 항상 멀게 느껴졌던 굽은 골목길을 따라 어느새 역까지 가 버렸다. 더 헤매 본들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 동네가 혼자 뭘 하며 즐거워할 분위기도 아니다. 얻은 것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것, 나름대로 고난과 역경과 기쁨과 성취감을 하나씩 떠올려 보며 지하철에 탔다.

 대단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