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갓 탤런트> 최성봉 논란에 부쳐 de la mode

케이블 채널 tvN이 포맷을 사들여 최근 선보인 “코리아 갓 탤런트”(이하 ‘코갓탤’)에 출현한 ‘한국의 폴 포츠’ 최성봉을 둘러싼 논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논란은 tvN측이 최성봉의 예고재학 사실을 숨기고 인터뷰 일부만을 노출하는 편집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방송사측이 의도적으로 ‘어떠한 정규 교육을 받지도 않았으나 타고난 재능과 순수한 열정만으로 아름다운 음색을 갖게 된 껌팔이 소년’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따라서 ‘코갓탤’이 조작 방송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6월 3일 방송분에서 최성봉은 5세가 되던 해부터 잦은 학대를 피해 고아원을 나와 혼자 자랐으며, 처음으로 좋아했던 것이 음악이라는 고백과 함께 ‘넬라 판타지아’를 불러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때문에 만약 그가 예고에서 성악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둘러싼 미담은 일종의 거짓이 될 것이고, 시청자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방송사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심이 불거짐과 동시에 ‘일부’ 네티즌들은, 조작방송은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며 방송사 측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맹렬하게 개진했다. 각 포탈 사이트의 검색 순위는 연관 검색어로, 연예 뉴스란은 이 사실을 알리는 기사로 채워졌고, 각 포탈 역시 배반당한 시청자들이 몰린 탓에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재잘재잘’ 트위터 등에서도 짚단 불타듯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결국 ‘코갓탤’은 대중의 외면을 받는 자충수를 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tvN 측은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인터뷰 부분을 재편집한 ‘온전한’ 방송분을 공개할 것을 약속하며 즉각적으로 넷심 달래기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방송사 측이 명백한 잘못에 대해 보여준 태도와 달리 이토록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이 놀랍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은 tvN이 그간 보여주었던, 오로지 시청률을 위한 자극적이고 비윤리적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행보와 대조했을 때,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따라서 나는 tvN 측의 즉각적 반성이 오히려 그들의 노림수가 아닌가 의심한다. 방송사의 뻔한 수작-네티즌들의 비난-실수 인정이라는 예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코갓탤’은 순간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이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 논란의 전말을 다룬 기사 대부분이 그 논조와 관계없이 최성봉=폴포츠 공식을 반복하여 이를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는 점도 흥미롭다. 기사의 끝머리는 대개 그의 맑은 음색과 놀라운 재능에 대비되는 어두운 개인사를 첨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가. 요컨대, 네티즌들은 방송사 측의 얕은 술수를 간파했다고 자평할 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tvN의 수작에 보기 좋게 넘어간 꼴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코갓탤”은 대중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이는 술책을 통해 역설적으로 ‘대중의 관심’이라는 성채(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지난주,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음악감독 박칼린의 독설을 소스로 한 언론 홍보가 큰 효과 없이 묻혔던 것에 비해, 이는 얼마나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되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tvN의 결정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충분히 고려하여 내린 용단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시청률을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최근 들어 두드러진 중요한 문제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사실관계가 이 매체의 기본 속성인 신속함이 배태하고 있는 ‘무비판적이고 즉각적인 수용’을 등에 업고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예증하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용하는가? 그런데 반해, 우리는 이를 얼마나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가? 감상적이고 자극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가운데 대다수 네티즌은 스스로 ‘깨어 있는 지성’을 자처하고, 또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꼭 그렇게 빨리 정보를 수용하고, 또 그것을 신속하게 전파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여기에 대해 너무나도 무신경하다. 이건 명백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