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서적 읽기 scraps

정진홍,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 시간에 30쪽, 하루에 다섯 시간. 인문학을 공부한다면서 적어도 그러한 기준으로 책을 읽지 않으면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랬었다. 아직 그러한 선언은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선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럴 듯하게 여전히 그 선언을 학생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아련한 향수 속에서 내 젊음과 만난다.
 전공서적을 읽을 때면 늘 초라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서 겨우 낙수落穗를 줍는 내 몰골이 드러나면서 그랬었다. 좀 겸손하면 그렇지 않으리라, 더 잘 배울 수 있으리라 다짐하곤 했지만 저 들판 끝녁에 가득하게 쌓인 밭주인의 곳간을 바라보노라면 없던 시장기가 들면서 헛헛했다. 그래서 이래저래 낙수줍기조차 힘이 부친다. 지금껏 그렇다. 쓰리라. 나도 쓰리라. 전공서적을 읽고 살다보면 그렇게 오만해지고, 오만은 그렇게 의무로 일상화된다. 그런데 갑자기 니체가 되고 싶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같은 것을 쓰고 싶다. 그랬었다. 그런데 아퀴나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신학대전」같은 치밀한 논리와 명료한 개념을 닮지 않으면 '전공서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권위는 어디에나 있는 법, 학문의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존 자체가 이미 초라한, 그런데 오만한 독자에게는 불가항적인 폭력이다.
 이쯤 되면 나는 학문이라는 이름의 권위에 조용히 예속되어야 한다. '의존'은 얼마나 '안전'한 것인가? 더구나 승인된 권위의 그늘인데. 나는 서서히, 그리고 착실하게 자신에 대한 위선을 배운다. 내게는 물음이 없다. 있어서는 안된다. 물음을 배운다. 배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배운다. 위선은 이렇게 자기기만에서 극치에 이른다. 엘리아데의「종교양태론」을 처음 읽었을 때, 내가 놀란 것은 '학자'도 때로 정직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테면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을 운위하는 것에 식상한 터에 '도대체 인간들은 무엇을 일컬어 종교라 하는가'하는 물음을 묻고, 그것을 자기 나름의 범주에 집어넣어 설명하는 무모함. '"나는 이 책에서 종교현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을 피하고, 종교현상 자체를 '성현'(聖顯, hierophany)으로 취급하였다." 라고 말하는 눈치 없는 과감성. '역사'를 운위하지 않으면 유인원이 되어버리는 풍토 속에서 그는 그렇게 발언했다. 나는 '감격'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감격 또한 예속의 다른 모습인 것을 터득하는 데는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뜻밖에 내 전공서적 읽기가 사뭇 안온했던 것을 갑작스레 느꼈던 것이 그 징표이겠는데, 나는 그때 그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 공감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어떤 것도 그것들은 스스로 정의를 거절해버리는 미궁 같은 것들이었다." 그 공감 속에서 차츰 그가 내게 '미궁'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전공서적 읽기가 편하지 않게 되었을 즈음 나는 그저 만사에 '속수무책' 이었다.
 마침내 전공서적 읽기로, 그것도 종교를 알려는 읽기를 살아온 생애의 끝자락에서 나는 정말이지 종교가 무언지 모르겠노라고 고백하는 자리에 이른다. 그런데 나를 '아끼는 분'들의 충고가 무성하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학문을 '파괴'하는 짓이라고, 아니면 학자이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슬그머니 겁이 난다. 곱게 늙어야 할텐데.
 조나단 스미스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다. 그런데 그 영감은 아직도 겁이 없다.「종교 상상하기: 바빌론으로부터 존스타운까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는 없다. 있는 것은 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안에 있는 종교들 뿐이다." 나는 공연히 들뜬다. 이러니 내 전공서적 읽기가 철이 나려면 얼마나 더 긴 세월을 익어야 하나?
2002.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