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동 주앙 Dom Juan, ou le Festin de Pierre> de la mode

 몰리에르 극은 그 명성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희곡으로만 접해봤다. 물론 몰리에르 자신도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번안했을 만큼 동 주앙에 대한 이야기는 긴 생명력을 갖고 꾸준히 재해석됨으로써 널리 알려졌던 것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이 이야기의 원형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차용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에스파냐의 전설적인 난봉꾼 동 주앙의 이름 혹은 이야기를 빌린 몇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경험은 있지만,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공연을 볼 기회는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한들 굳이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 까닭은 기존에 텍스트를 통해 접했던 작품이 다소 허무맹랑한 전개와 더불어 그다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빈번하게 반복된 이야기의 원형에 진부한 느낌이 들었고 갑작스럽게 봉합되는 극의 마지막 전개 부분이 놀라움을 얻어 허탈함으로, 연이은 실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막상 공연 당일까지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차용된 이미지가 아닌 정통 공연을 확인함으로써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공연은 오리지널 텍스트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면서, 이야기는 더 다채롭고 의미는 풍성해졌다. 특히 원작보다 풍성해진 내용은 문자 그대로 원작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이야기 전개에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몸짓과 대사는 17세기, 프랑스와 21세기, 대한민국의 간격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한 감성에 기반을 둔 희극의 본질, 즉 웃음을 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원작 텍스트에서 찾을 수 없는 유쾌한 연기와 재치있는 대사는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인데, 이 같은 특징은 희곡이 공연을 통해 완성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었다. 또, 극의 전개와는 큰 상관이 없는 사소한 것이지만, 새로 쓴 몇몇 대사에서 무척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이 '재해석'은 위트있게 본 공연에 녹아들어 갔다.

 본 공연의 또 다른 강점은 무대와 의상이다. 충실하게 재현된 의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무대가 되는 시간과 공간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제 역할을 다 한다. 화려한 의상은 극 중 등장인물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으며, 무대는 재치 있게 구상된 연극무대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예시가 될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극의 전개를 매끄럽게 이끌어 나가는데, 세 층위로 구성된 무대의 활용과 후면에 구성된 액자식 구성이 돋보인다. 이는 과도하게 재해석된 무대의상에 대한 거부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가장 단순한 기능미를 보여주는 연극 무대에 관한 주관적 취향에 걸맞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석상을 보고 느꼈던 놀라움과 유쾌함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석상이 주는 놀라움과 석상의 초대와 신속한 지옥행이라는 초현실적인 전개가 보여주는 어떤 능청스러운 유쾌함은 <동 주앙>의 위트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 극은 우리에게 위선에 대해 묻는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각 등장인물은 시대의 윤리 규범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의 행동을 보면 이들이 마냥 도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한편, 보편적인 윤리 규범에 의하면 동 주앙의 행동은 퇴락의 결정체이자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 인간의 끝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그의 행실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감만이 가득했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들, 당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그와 같은, 혹은 흡사한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막이 내리는 순간에 이르자 이러한 일련의 생각들은 동 주앙이라는 인물을 덮어놓고 비난할 수만은 없겠다는 공감 어린 시선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윤리 규범이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압하고, 선이라는 이름의 악행을 서슴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우리는 이 대목에서 어렵지 않게, 문명의 폐해를 역설했던 루소의 입장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은 여전히 가감 없이 유효하다. 그리고 이미 수 세기 전에 몰리에르가 던졌던 질문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