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이 지난, 한 시의 사무실은 한가하다. 유연근무제로 대부분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온전히 여유로운 기분이다. 여러 팀과 협조를 해야만 하는 일의 특성상,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요즘에는 그렇게 할 일이 많이 없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주로 밀린 행정 업무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루어 두었다가 처리하곤 한다.
세 시가 넘자, 다른 형태의 유연 근무를 선택한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잔업을 처리하던 사람들도 사무실을 떠난다. 다섯 시까지 두 시간동안, 나도 그럭저럭 한 주의 일들을 처리하고 한가한 기분에 빠져든다. 고요한 사무실에서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생각하다가 올해의 신춘문예를 찾아 보기로 한다. 딜레땅뜨를 자처하는 나에게 이것은 매년의 루틴이다.
올해의 신춘문예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뜬구름 잡는 말들 뿐이다. 어떤 문학은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데, 요즘 나오는 신춘문예들은 그렇지 않아 못마땅하다. 매끄럽게 짜여진 문장들은 내가 속한 삶보다는 문학 저 멀리 어딘가에서만 통용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소설도, 평론도 그러하다. 아감벤이나 들뢰즈 같은 이름이 당연한 듯 등장하는 것은 이제 놀랍지 않다.
아주 옛날, 나도 그런 언어를 마음껏 사용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한 시간이 있다. 어디선가 발터 벤야민이 '각주만으로 쓰여진 글'을 쓰고자 했다는 말을 나는 기억한다. 지적 유희의 끝자락에서 모든 텍스트가 얽히고 섥혀 있는 그런 모습. 그러나 이제 나는 그런 글을 쓸 수도, 쓰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모든 것의 끝에서 결국 내가 소망하는 글은 인간을 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향점이 인간과 인간 본성에 닿아 있다면, 그래서 내가 어떻게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유로 나를 이끌 수 있다면, 그렇게 현학적인 행간과 관념적인 언어들은 더이상 나에게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 잊고 지내고 싶었으나 그러하지 못한 단어들이 되려 낯설게 느껴진다.
태그 :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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