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해제 인사명령의 건 daily


 오후 네 시, 홀로 2번 회의실에 덩그러니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가, 환기를 하겠다고 창문을 크게 열었다. 밖에는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이어폰 너머로 음악 소리가 작게 새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증이 도진 것 같다. TF 7일 차, 2월의 마지막 날에 생긴 일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배신을 한다고. 그것은 협의에서의 뜻이 아니라 그냥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수많은 상황을 향한 어리광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투정 부리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지낸다. 나는 내가, 뭇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곁을 좀처럼 내주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고 또 실제로도 그런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굳이 그런 표현을, 편의에 따라 몸에 두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밤 빗줄기가 땅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느지막히 우산을 펼쳐 드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오늘 우울했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특히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오늘, 어제, 이번 주, 지난주에 내뱉은 말들을 후회했고 그럴 만한 까닭은, 내가 새로운 팀에 들어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일 거다. 침묵의 순간은 싫다. 누군가 말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기꺼이 입을 열었고 사실 그럴 때마다 내 이야기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아마 그런 순간들을 통해 조금씩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오늘의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역치를 넘어선 게 틀림없다. 퇴근하는 길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대수롭지 않은 수습 평가가 있었다. 지난 한 주간 계속 진행은 되어왔을 텐데 너무 바쁜 나머지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나는 그 일 역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하며, 맡은 일을 끝까지 마치고 내 자리로 짐을 챙기러 돌아갔을 때, 주변에서 인사 명령이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은 수습 해제 인사 명령이 있는 날이었다.

 친구들은 오늘 모두 바쁘다. 단체방에 ☆축 수습해제☆ 라고 써 봤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 읽은 사람이 두 명밖에 없다. 두 명이나 있었는데 아무 대꾸가 없다. 나는 내가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평가가 있고 그것이 내게 약간은 신경 쓰이는 일이라는 점을 말한 일은 없다. 설 연휴 전후로 쭉 TF 건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던 나는 최근 주변 사람들과 어떤 주제로든 대화한 일이 없다. 그럼 모두의 무반응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고 그건 내 탓도 조금은 있다.

 축하하고 싶었다. 축하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수습 해제라고만 말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렇다.

 아홉 시, 집 근처 미리 봐 둔 까페에 갔다. 케익을 먹을 수 있는 까페다. 들어가 보니 '마망갸또'에서 납품받는다고 쓰여 있다. 한때 유명했던 제과점이다. 그럼 캐러멜 롤을 먹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진열장을 훑는데, 그건 없다. 늦은 시간이라 다 팔렸나. 대신 '비스퀴 쇼콜라'라고, 정말이지 달콤하게 생긴 케익을 골랐다. 에스프레소도 한 잔, 같이 주문했다. 커피에서 달콤하고 쓴맛이 났다.

 내가 외톨이라는 생각도 했다. 쓸쓸하다. 별 것 아닌, 수습평가가 끝났다. 2월의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