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삶자 daily


 금요일 퇴근하고 월요일 출근할 때까지 40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자는 일은, 내게는 손에 꼽힐 대사건이다. 한 시간마다, 혹은 두 시간마다 깨면서, 늘어지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 주말이었다. 오늘 아침에 별생각 없이 감기약 하나를 더 먹었다가 종일 약에 취해, 하루 더, 몽롱한 날을 보냈다. 어쩌면 나는 오늘, 이번 설 연휴에 세워놓은 계획을 모조리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결국, 그런 일은 기우로 끝났고 또 설령 그리되었다 해도 약간 덤덤하고 말았겠지만, 막상 퇴근하고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비로소 그 불안함이 실감 났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는 근거 없는 생각에 커트를 하러 갔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성향은 꼭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고를 때 말고도 무척 유용한 의사결정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코트를 솔질하고, 전기 요금은 내일 내야지, 영수증 정리도 내일, 짐 싸기는 모레. 미룰 수 있는 일들을 전부 미뤘는데 저녁은 미룰 수가 없었다. 내일도 하루를 얼떨결에 놓칠 수는 없다. 주말이 없었으니 나는 그만큼의 빈 시간을 채워야 한다. 미룰 수 없고 채울 수 있는 일, 딸기를 씻고, 가게에서 사와, 식탁에 올려 두고 잊어버렸던 밤 페이스트리를 조금 뜯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계란을 삶아야겠다. 월초에 과감하게 계란 한 판을 살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정도 가격이면 절반을 버리게 되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고 또 이틀간 굉장한 기세로 계란을 먹어치우면서, 이런 식이라면 한 판이 아니라 두 판이라도 먹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안 좋은 방향으로, 예상을 빗나간다.

 계란은 열다섯 알이 남아 있었다. 일주일 부지런히 먹고 그다음 한 주간은 손도 대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은 것은 냉장고 속 생수도 마찬가지니까 딱히 계란이라서 손을 안 댔다기보다는 그만큼 뭐가 바빴다. 내 시간은 항상 무언가로 가득했다. 지난 보름은 더 그랬다. 계란을 삶자. 삶으면 오늘도, 내일 아침에도, 내일 저녁에도, 모레 아침에도 먹을 수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계란을 잘 못 삶았다. 어떨 때는 시간 조절을 잘못해서, 노른자가 서늘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껍질이 잘 안 벗겨져서 흰자 거의 전부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달그락거리던 계란들이 서로 깨져 계란국 같은 냄비 속으로 국자를 넣어 계란을 꺼내고, 살피고, 마지막으로는 두 번째 경우처럼 그렇게 또 흰자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곤 했다.

 나는 이제 나이가 조금 더 들었기 때문에 그동안 꾸준히 계란을 익히는 연습을 했다거나 최소한 유튜브 같은 걸로 계란 잘 삶는법을 유난히 공부하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 냄비에 계란을 담을 때도 방심하지 말고 하나씩 조심스럽게 다룰 것, 물을 채우고 계란을 잘 관찰하면서 불은 매우 약하게, 뚜껑을 닫고 긴 시간을 들여볼 것, 혹여 냄비가 달그락거리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필요한 만큼 기다릴 것. 그리고 물이 죄다 식어버리기 전에 찬물을 부어, 익혀낸 계란을 씻어낼 것. 나는 한참을 주방에 서서 냄비에서 어떤 소리가 새어나올지 귀기울였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그 소리만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금요일 아침부터 아팠던 까닭은 신경성이 틀림 없다. 신경을 너무 써서 기력을 소진한 탓이다.

 주방에 마련해 놓은 접시에는 달걀 열다섯 개가 냉장고에서 나오기 전 그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늘 저녁은 실패한 계란이야. 온전한 것이 남으면 그건 내일을 위해 보관해 둘래. 화장실에 다 마른 수건을 채워 넣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 깨지거나 금이 간 계란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상처가 생긴, 그 계란은 손에 쥐어 보니 아직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껍질을 벗겨서 입에 넣었다. 노른자까지 잘 익었다. 하나도 실패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세 개 먹어야지. 이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깨진 것 하나를 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어 자신감이 생겨도 하나 정도는 깨지는 걸까. 다른 열네 알이 고스란히 몸을 말릴 때 나는 작게 금이 생긴 한 알이 못내 아팠다. 내 몽롱한 하루가 그렇게 달그락거리며 끝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