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daily


 사천 요릿집에서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각은 밤 11시였다. 오늘은 회사의 연말 자선경매에서 부서 비용으로 구입한 발렌타인을 마셨다. 온 더 락으로 석 잔 정도밖에 안 마셨는데 오랜만에 술을 먹다 보니 온몸이 화끈거렸다. 마치고 나오니 밖은 용광로처럼 춥다. 집에 돌아와서도 혀끝에 위스키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얼른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다음 눕고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 들어가 물을 틀었는데, 잠시 흘러나오던 물이 금세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수도관이 또 얼어버린 모양이다.

 올겨울 최악의 한파에 기온이 급격히 낮아진 탓인지 낮이었음에도 이렇게 된 모양이다. 그제 낮에 집주인이 보낸 문자가 생각난다. '죄송해요~ 그런데 올겨울 들어 제일 춥다네요~ 물 좀 졸졸졸 틀어놓아 주세요 정말 미안해요~' 보름 전인가 한 번 수도관이 얼어버린 일이 있다. 아침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워, 생수 세 통을 써서 머리를 감고 몸을 대충 씻고 양치질은 회사에 가서 한 일이 있었다. 그 날 오전 설비를 불러 수리를 했다는데, 원인을 따져보니, 그때는 수도계량기를 점검한 이후 방한 조치를 하지 않고, 계량기 문도 열어놓고 간 탓에 수도관이 얼었다고 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집주인이 신신당부했음에도, 얼마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음에도 그 말을 무시한 셈이 된다. 그래서 이건 내 잘못이다. 간밤에는 주방 수도를 조금 열어 놓았지만, 낮에는 뭐, 괜찮겠지. 햇볕이 있으니까. 하며 습관적으로 물을 잠가 버렸던 것이다. 계량기가 동파되어 비용이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내야겠다 생각했다. 황망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설상가상 너무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집주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안일했던 내 판단을 원망하고 앞으로는 수도요금 십만 원을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도 또 생수로 씻고 출근을 해야 하나?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얼른 방법을 찾아내 결단을 내릴 시점이었다. 인터넷에 수도관 동파라고 검색하니 같은 위기를 재치있게 극복한 사람들의 조언이 잔뜩 나왔다. 헌 옷, 귤껍질 팩, 핫팩 등. 수도관을 가열하여 얼어붙은 속을 녹인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그 수도관이 당최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헌 옷은 없다. 집에 귤은 한 상자 있다. 전자렌지도 있다. 당장 귤을 15개 정도 먹으면 귤껍질 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배가 부르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귤을 그렇게 많이 먹으면 토할지도 모른다. 결국, 생수를 한 통 꺼내 끓이기 시작했다. 건물을 돌며 우리 집 배관이 어딘지 찾았다. 계량기 옆에 웬 수도꼭지가 달려 있길래 조금씩 열어 보니 유독 반응이 없는 녀석이 있다. 이거다. 물을 끓여 비닐봉지에 담고, 다른 봉지에 한 번 더 밀봉한 것을 2개 만들었다. 바스타월로 공간을 채워 온수 팩과 파이프가 닿는 면적을 극대화했다.

 주방과 욕실의 물을 틀어 놓은 상태에서 삼십 분 정도,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물소리에 깨어난 것은 2시 경이었다. 물이 잘 나오고 있다. 추가 동파를 막기 위해 온수 팩을 제거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도 그렇게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 가끔 이렇게 문제해결 이후 느끼는 감정이 불쾌할 때가 있다. 어쨌거나 늦은 시간이었기에 뿌듯함과 동시에 노곤함이 밀려왔다. 주말에는 추가 조처를 해야겠다. 잠들기 직전, 다이소에서 본 파이프 단열재가 머릿속에 떠올라, 정신을 잃을 때까지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