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의 변 dearest


 직장을 그만둔 지 만으로 6개월이 되는 날이다. 반년이다. 긴 시간 같지만 나는 이 긴 시간을 찰나같이 보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걸을 때는 하루가 무척 길었다. 하지만 그 시기 외에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쏜살같이 흘러갔으며 그 안에서 나는 이따금 권태나 좌절을 느끼며, 대체로 불안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하루하루를 삼켰다.

 지난 시간을 요약 평가해 보라면 나는 그것을 실패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근거는 그동안 재취업을 못 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지원할 공고도 없는 판에, 놀랍게도 한 번에 그동안 진행하던 건이 모두 불합격으로 결론 났던 며칠 전, 나는 그 날이 퇴사 일자로부터 딱 6개월 되는 날임을 깨닫고 열패감에 우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좋을지가 중요할 텐데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 보다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게 된 안타까운 사연에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더럽고 치사한 사정이 있었다. 봄의 끝자락까지 여행을 다니던 나는 5월이 되어서야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6월이 끝날 무렵까지, 뾰족이 지원해볼 만한 자리가 없었다. 그때까지 네 곳, SIEK, 코닥, 코오롱, 기아에 지원서를 냈지만, 다들 내 경력과 크게 연관이 없거나 요구 연차에 미달하거나 하는 곳들이었다. 뭐, 써서 손해 보는 것은 없으니 한 번 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더욱이 어디든 지원서만 내면 잘 풀릴 거라는 예상과 현실은, 달랐다. 그 와중에 나는 이력서를 꾸미거나 지원서를 쓰는 일에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어 한참을 고생했다. 돌이켜 보면,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그때부터 겁을 먹고 있었다 한들,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몇 번의 연휴와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처음으로 그럴듯한 기회가 찾아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감은, 그 포지션의 경우 내가 하던 일과 크게 차이가 없어, 내 경험을 최대한 살릴 수 있었기에, 슬그머니 되돌아왔다. 제한된 시간 내에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나는 최종 면접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면접은 긴장되는 순간이라기보다는 업무상 미팅을 하는 기분이었다. 차분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어, 합불 여부를 떠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성장 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현실에서,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일반적으로 '합불 여부를 떠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불합을 일찌감치 눈치챈 사람인 것 같다. 며칠간 전력으로 내달았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취업 시장의 경쟁은, 경력직이더라도, 생각보다 치열한가보다, 이렇게 생각할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일상은 반복되었다. 나는 매일 잠들기 전 내일은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을 바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대로 실직 상태가 길어지면 생길, 현실적인 고통에 관해 상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새로 올라온 공고가 없는지 채용 사이트 몇 곳을 하나씩 확인하고, 밥을 먹고,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한 운동을 하고, 또 매일 해야 하는 사사로운 일을 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뚜렷한 성과도, 진전도,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나는 무기력하거나 불안해하며,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제안에 의욕을 불태우다가 또 금방 사그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 달이 더 흘렀다.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자유와 기쁨과 성취감으로 가득 찼던, 인생의 한 페이지를 덮은 후 맞은 첫 번째 여름을,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무더위와는 동떨어진, 매서운 취업난의 한파를 비로소 체험하여, 한 마디로 보릿고개라고 요약하면 딱 적당할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 경험의 터널 안을 걷는 나는, 이제까지 그랬듯, 비록 느리더라도 차분히 한 걸음씩 걸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그리고 걸어온 길 위에 후회의 감정을 남기지 않도록 용기를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