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dearest


 뉴델리에서 처음 만난 그는, 한 마디로 줄이기 어려운 인간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런 사람을 처음 겪었다. 물론 인간은, 모두 각자의 역사가 있어, 온전히 파악하기란 어렵다고들 한다. 그것은 완벽한 공유가 불가능한 역사이므로, 따라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타인을 한 문장, 한 단어로 요약하는 일이 무척 흔하다는 사실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면, 오히려 그러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타인의 삶을 요약하는 행위가, 그토록 쉬운 걸까. 동시에 그것은, 멋대로 타인을, 단순하게 정의내림으로써,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인간관계의 서글픈 초상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그린 파크였다. 코참 연례회의 뒷풀이. 서로 관심 없는 사람들이 모임 셈이라, 대화 주제는 골프, 이따금 미혼인 나와, 그를 엮어, 밑도 끝도 없는 농지거리를, 나로서는 받기만 하는 그런 자리. 음식도 별로였기 때문에, 썩 불편한 자리였다.

 우리가 다시 만난 곳은 메리어트였다. 출장에서 돌아와 맞은 첫 주말, 약간의 의무감으로 만난 자리. 당시의 우리는, 아마, 권태로운 델리 생활에 염증이 난 상태로, 서로 조금씩 품을 보태면, 무료하지 않은 토요일을 만들어볼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온전히 서로를 마주하는 첫 번째, 어색함을 풀어준 것은, 그가 지니고 있던 책 한 권이었다. <페스트>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이런 책 읽는 분 만날 줄은 몰랐어요. 저, 한국 들어갈 때마다, 무거우니까 항상 고민해요. 괜찮으시면 우리 그거, 바꿔 읽으면 어때요? 저는 <구토> 드릴게요.’

 책이 반가워 쏟아낸 말에, 편해졌다. <페스트>나 <구토>나, 혼자 읽을 생각이었다면, 인도 생활이 끝날 때까지, 단 한 권 읽는 것도 벅찼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에 담겨, 이 두 권은, 그 순간부터 우리의 책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이들을 접할 때면, 그 날의 신선한 만남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두 권의 책을 아직까지 읽기 않았다. 어쩌면,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는 것, 그것도 색다른 독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선생님, 갑작스럽지만, 저, 곤란해요. 도움이 필요해요. 깊게 묻지 말고 절 도와주셔야 돼요.’

 흔히, 남의 인생을 즐겨 소비한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안줏거리로는 실격이다. 그럼에도 그 낡고 오래된,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내 삶에 가져온 변화는 지극히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삶은, 악몽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악몽은, 내 삶으로 조금씩 전이되었다. 내 삶은 금세 깜깜해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며, 벽을 더듬을 때마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말과 행동을 통해, 정성과 시간을 들인 관찰을 통해, 그 속을, 조금씩 알아나가는 경험은 흔치 않다. 나는 불필요하게도, 그의, 은밀해야만 했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꽤 오랫동안 그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모든 것은 성격의 문제였다. 오이디푸스적 휘브리스.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판도라다. 뭐라 이름 붙여도 상관 없을, 그 복잡한 감정, 어제의 후회들, 그리고 불안한 내일들. 나는, 얼마간 당시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간편한, 가해자의 자기합리화다.

 ‘나한테는 아직 지금 일이야.’

 오늘은, 여러 개의 보관함에 나눠 두었던 서류나 영수증 뭉치를 정리했다. 얼핏 보니, 런던하고 모스크바만 처리하면 될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파일 중 하나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특정 시기의 법인카드 영수증과, 20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적인 영수증들, 3년 전, 홍콩이며 싱가포르를 여행한 기록, 편지들, 쪽지들을 찾았다. 그들은 내가 잊고 지내던 아련하고도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너는 진짜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지금껏 살면서 본 사람 중에 니가 제일 미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해 보자면, 그는 본뜨고 싶은 인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바디케어 취미를 배웠다. 다른 장점도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말과 행동만으로, 즐거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같은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는 내가 문학 전공이라는 사실을 즐거워했고, 내가 일기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 혹은 소파에 널브러져 책을 읽을 때면 느껴지는, 그의 애정 어린 호기심을 좋아했다. 그는 나의 취업 전 고민에 깊게 공감해 준,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인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제는 추억이 된 시간을 함께한 사람.

 더없이 훌륭한 인간이 내린, 멍청한 결정은, 그리고 그 결정이 말미암은 이야기의 끝은, 그의, 표면적으로 훌륭한 성품과 대비되었다. 그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을까 하면, 그것도 참 흥미로운 얘기다. 그를 둘러싼 나의 모험, 지금은 나를 떠나간 그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글들을 썼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나를 그런 막다른 길까지 몰아붙였던 그에게, 약간의 고마운 마음도 가지고 있다.

 오늘 이 파일을 정리하면서 회상한, 한 때 소중했고, 다른 한 때는 혐오했던 시간을, 그 시간이 담긴 편지며 서류들을, 나는 이제 태워버려야 한다. 그것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당시에 겪은 몸과 마음의 변화가 떠올라, 막연한 두려움, 혹은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나는, 가끔, 없애버리고 싶지만 잊기는 싫은 물건들을 거두어 불에 태움으로써, 물건에 담겼던 기억을, 행위에 담긴 기억으로 옮기는 버릇이 있다. 지금까지 겪은 몇 차례의 화형식은, 대체로 연인과의 이별 후 벌인 일이었다. 짐을 꾸려 밖으로 나오니, 조용히 가라앉은 밤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그리고 그는, 긴 시간, 각자 먼 길을 돌아, 다시, 그리고 여전히, 같은 달빛 아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