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daily

 사직서를 쓴지 달포, 그러나 진전이 없었다. 이렇게 어물쩍, 의미 없이 회사에 더 머무르게 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간의 경험 때문에 간여하지 않았다. 서로 도와가며 효율을 높이는 것은 내가 선호하는 업무 방식이지만 여기서는 항상, 어떤 문제에 개입하는 순간,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그것이 내가 이 나라에서 배운 부끄러운 노하우다. 그럼에도, 이제는 직접 해결을 해야 할 시간이다. 반나절 전화를 돌리고 메일을 썼더니 뜻밖에 일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남은 연차 문제도 긍정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달력을 보니, 둘째 주부터 2주간 출근을 거의 안 하게 되므로, 마지막 주에 인도를 떠날 계획인 내게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차주 핀란드도 준비가 부족한데, 귀국하면 바로 포르투갈에 갈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동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산티아고행 결심이, 거짓말처럼 흔들린다. 그냥 가지 말까.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는 것이므로, 그런 결심은 그냥 철회할 수 있는 것이다. 기실 오랜 기간 준비한, 어떤 중대한 계획조차, 포기하는 데는 대단한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취업이나 할까. 회사와 요리학원이나 다니면서, 물건이나 사 모으고 잡담이나 하며 살까, 하고 생각한 것은 달력을 보다가 너무 촉박한 일정에, 3월이라는 취업 시즌을 놓친다는 것이, 참 무의미하게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월에구직활동을 게을리하면 나는 참으로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게 되나? 그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문제다.

 도리질을 한 번 치고 일단 대략 날을 계산해 본다. 리스본 이틀, 포르투에서 이틀, 산티아고까지 열흘, 마드리드 이틀, 바르셀로나 이틀, 런던 사흘 하면 딱 3주가 된다. 톨레도, 그라나다, 발렌시아도 가 보고 싶었고 리스본에서는 느긋하게 며칠 머무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행 기간은 한도 없이 늘어나게 된다. 이미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은 열흘만 하자고 타협한 데다, 기타 일정도 스페인 국경 동쪽으로는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스페인 국경 서쪽으로 카나리아 제도나 지브롤터, 세우다, 더블린, 브리스톨도 가보고 싶다, 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럼 아예 여행 기간을 2개월로 늘려버리고,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을 해야 할까? 생각이 그렇게 꼬릴 문 지가 그럭저럭 한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