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daily

 다섯 시에 일어났다. 고요한 토요일 아침이다. 지난 한 주간 일어났던 많은 일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달아오른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가서 잘못하면 그걸 토해버릴지 모르겠다.
책장에서 <굿바이 콜럼버스>를 꺼내 읽었다. 동명의 표제작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멋대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단정하고 있었다. 100 페이지쯤 되는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팔다리가 길쭉하고 곱슬머리를 한 유대인으로, 뉴어크에 살 것이다. 부모님은 코셔 정육점을 경영하는 소상공인으로 평생을 정통파 유대교 율법에 따라 성실하게 살았지만, 대공황, 세계대전, 냉전, 매카시즘 등의 사건들이 평화로운 가정을 조금씩, 특히 경제적으로 좀먹는다. 부모님은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어온 산 증인이지만, 다른 시대를 사는 주인공과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어, 이들은 얼핏 보면 세대 갈등으로 보이는, 문자 그대로 세대 갈등을 겪으며 고통스러워한다. 학교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몇 번 데이트하지만, 결국 평범한 연인들처럼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다투다가 헤어진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 모든 사건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미국계 유대인이 짊어진 어떤 돌연적이고 숙명적인 일들의 상징이라고 넌지시 암시한다.

 이런 선입견은 말 그대로 망상에 불과했다. 일단 표제작은 200페이지짜리 중편이다. 정육점은 고사하고 '코셔' 단어도 단 한 번만 등장한다. 여자친구를 만나 서로에 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핵심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 여자애는 중증 우울증을 앓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

 이 소설은 필립 로스의 데뷔작이다. 그리고 필립 로스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그렇다. 호혜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얼마 전에 묵혀뒀던 <네메시스>를 봄베이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을 때 느낀 충만함, 그것의 갑절이나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예리하고, 명료하며, 단정적이자 선언적이다. 80 페이지쯤 어딘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200살 먹은 돈 드릴로는 당장 혓바닥으로 필립 로스의 구두를 닦아야 마땅하다, 고 생각했다. 나는, 지난주부터 주중에는 돈 드릴로의 <마오 Ⅱ>를 읽고 있다. 그러면서 패기로 충만한 필체, 허세에 가까운 과장법에 진저리가 나던 참이었다. 그런 연유로, 이토록 훌륭하고, 아름다운 글을 읽고 있는 시간까지 소중하게 느껴진다. 방 안이 삽시간에 꽃봉오리로 가득 차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만개했고, 꽃잎 사이사이 햇볕의 따스한 감촉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고 과장하면 그것 새빨간 거짓말이고, 아주 고요한 방바닥에 모기 한 마리가 명을 다하여,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면 그것 역시 거짓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