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6일 일기 look back in anger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한 집안일이 일요일 오전까지 아주 느긋하게 이어졌다. 베란다, 집안, 부엌 청소같이 매번 하는 것 외에도 이번 주에는 에어컨 필터, 냉장고, 싱크대를 청소했고 붙박이장에 방치된 물건들을 정리했다. 특히, 굳이 일기로 남길 만큼 중요한 숙원 사업을 하나 해치웠는데, 그것은 바로 온수기 교체이다.
 지난겨울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온수기는 지난 달 카드빚을 한 번에 청산하면서 생긴 금전적 여유, 두 달 동안 거의 없었던 예산 외 지출에 따른 마음의 평화, 다가오는 차가운 계절에 따라 예상되는 온수기 할인 종료 등의 상황에 따라, 요컨대 더 늦추면 손해를 볼 것이라 득 볼 부분이 전혀 없으므로, 반드시 지금 처리해야 하며, 늦출 이유가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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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오전 늦게나 되어서 비로소 난장판이 된 집안을 정리하며 계획했던 과업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외부 사람을 불러 뭘 시키는 일은 항상 짜증 나는 성질의 것이지만 이미 그 정도의 난봉은 예상했던바, 굳이 따로 적어 남기지는 않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에 꽤 시원해진 바람이 부는 날씨, 평소보다 조용한 일요일 오후에 마음이 말랑해져 남은 시간은 조용히 쉬기로 했다.
 저녁 시간이 되었으나 식사를 준비할 기력이 없어 KFC에서 치킨 두 조각과 징거버거를 시켰다. 오늘은 웬걸 75분이 지나도 배달을 해 주지 않는지라 그냥 굶을까 하다가 확인 전화를 한번 해 봤더니 막 출발했다느니 뭐 이런 소리를 하길래, 알았으니까 늦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자꾸만 출발했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전화를 끊고 1분 정도 지났을까, 음식은 결국 배달은 되었다. 그러나 471루피 계산서에 맞춰 건넨 501루피에 배달부가 말하길 잔돈이 없단다. 여기저기서 지폐를 모두 꺼내 펼치며 껑까는 인도인 특유의 좆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을 꾹 다물고 이따금 'no change'만 반복하는 배달부 앞에서 내가 사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특유의 표정을 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보내는 것 뿐, 이 지독한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이 수면 위에 만연한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친절한 외국인인 척하는 것, 하지만 오늘은 몸이 피로하기도 하고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 가끔 여기서 배달시키는데, 잔돈 없다고 하면 보통 팁이라고 하고 안 받거든. 그런데 너는 오늘 75분 정도 걸려서 나타났고 그래서지금 여덟 시 넘었잖아. 난 여섯 시 넘어서 치킨 못 먹는데, 30루피는 꽤 큰 돈이니까 난 오늘 꼭 잔돈 받아야겠어. 자꾸 없다고 하거나 다음에 갖다 준다고 하지 말고, 지금까지 다음까지 갖다 준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뭐 배달이 늦은 게 네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네. 일단 5분 줄게. 너 돈 많은 거 잘 봤고 잔돈 바꿔서 30루피 가져와."
 그 배달부는, 맨 마지막에 "within five minutes, you bring 30 rupees" 라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했지만, 애초에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무시하기로 결정했을는지도 모른다. 그 특유의 좆같은 표정은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던 그는 상황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모면한 것에 안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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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누가 나에게, 인도에서 사는 것 어떠냐고, 인사치레를 한 일이 있었다. 인도에서 산다는 것이 함의하는 불쾌한 상황들, 무례한 사람들, 부적절하면서도, 대체로 아주 미묘하게 부적절한 상황의 연속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신경한 혹은 의연한 또는 마음 씀씀이가 활수한 사람이라면 이 나라에서 살아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굳이 살아 볼 필요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하지만,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이 인도에서 보낸 시간의 축소판이며, 내 성격과 생활이 인도 경험 후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면 오늘 있었던 일련의 사건이 바로 그 이유를 농축하여 보여 주고 있는 사례라고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