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look back in anger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작은 사건도 사전에 전조를 남긴다고. 이 말을 풀이하면 세상일은 대체로 인과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그 전조가 주어지되 사람들이 흔히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어떤 문제의 발생을 미리 방지하는 데 실패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요 이틀 사이에 겪은 문제에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전조가 있었다. 2주 전 내렸던 봄비, 지난 주말쯤 웬일로 단지 전체를 방역하는 모습을 본 것, 그제 슈퍼마켓에 갔을 때 모기약을 매대에 잔뜩 풀어 놓고 할인 행사를 진행하던 일 등이 그 전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번 주 들어 이따금 모깃소리에 잠을 설친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며칠에 한 번씩 발생했고 모기 문제로 고민한 일은 아직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생각해 보면 최근 굉장히 피곤해서 너무 깊이 잠들어 매일 밤 모깃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건의 시작은 어젯밤이었다. 모깃소리에 잠을 설쳐 새벽 2시경 잠에서 깨, 뭔가 간단하게라도 조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불을 켰을 때, 방 안에 정확히 21마리의 모기가 산만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척 기괴한 광경이었다. 흰 벽, 흰 천장에 붙은 21마리의 모기. 마침 살충제가 다 떨어져 대신 액상 타입의 모기약을 새것으로 갈고 홈매트를 켜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간밤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수십 마리의 모기가 한 번에 날아오르는 광경을 목격한 이후였다. 나는 침실 구석에 모기향을 피워 놓고 방문을 닫은 다음 길을 나섰다. 거실에 있는 모기쯤이야 침실 단속만 잘하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퇴근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살충제를 사려고 했다. 모기를 잡는 데는 살충제가 가장 효과가 좋고, 한 번의 분사로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나름 통쾌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딱 스프레이 타입의 살충제만 품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어쨌든 침실에 피워 놓은 모기향이 하루 동안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관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침과 마찬가지로 예의 모기떼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이는 개체가 20여 마리였다.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을 하며 침실 문을 열었을 때, 뽀얀 공기와 매캐한 모기향 냄새가 온몸을 덮었다. 바닥에는 대략 30여 마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10여 마리의 모기가 간밤에 그랬던 것처럼 벽이며 천장에 달라붙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침실에 자리 잡은 모기를 모두 처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늘 밤 수면이 방해받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이때 했다. 거실에 나가 보니 발걸음을 따라 수십 마리가 내 몸을 에워싸듯 날아올랐다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같잖다는 인상이 점점 공포의 감정으로 바뀌어 갔다. 모기떼의 모습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다른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다행히, 첫 번째 들른 슈퍼마켓에서 675ml짜리 큰 스프레이가 있었다. 얼른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포장을 허겁지겁 뜯고 엘리베이터 안에 자리 잡은 모기떼를 향해 시험 분사를 마쳤다. 좁은 공간에서의 서너 차례 분사는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열자, 예의 모기떼가 날아올랐다. 나는 조금씩 살충제를 분사하며 칫솔이나 식기, 옷가지 등을 안전한 곳에 옮겼다. 준비가 끝나자 방과 거실은 살충제로 희뿌옇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공간이 넓은 만큼 효율을 배제하고 집 안을 살충제로 가득 메우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모기를 박멸하고 싶었다. 잠시나마 두려워했던 모기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

 오 분가량 방역을 시행하고 돌아보니, 흰 거실 바닥에 생각보다 많은 모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정말이지 끔찍한 광경이었다. 호흡하기 힘들 정도로 살충제로 가득 찬 집 안을 다니며 죽은 모기를 한곳에 모았다. 세어 보니 거실에 죽어 있는 녀석들만 약 170여 마리였다. 그때 느낀 기분은 일종의 황당함이었다. 모기약을 많이 마셨기 때문인지 몸이 늘어졌다.

 땀과 살충제로 미끌거리는 몸을 샤워로 씻어 내고, 약에 노출된 옷가지들을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오늘 방역에 675ml짜리 살충제 한 캔을 모조리 썼다. 평소대로라면 못해도 한 달은 쓸 수 있는 분량이다. 팬과 에어컨을 돌려 환기를 시키니 다시 깨끗해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일은 정말이지 무서울 만큼 이색적인, 그럼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