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관한 이야기 look back in anger

 지난 가을 무렵 달포 간 불법체류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남의 집에 무단으로 살고 있었다. 아파트 임대 계약을 갱신해야 했는데 연말이라 바쁘다는 핑계에 새해맞이 여행 일정까지 겹치면서 외면하고 있었다. 불경기에 공실률이 높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집을 놀리는 것보다 다만 한 달이라도 꼬박꼬박 집세를 내는 세입자를 두는 것을 그쪽도 당연히 선호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나이브한 태도로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계약을 갱신하고 싶은 것은 나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내망상에서 벗어나 관리인에게 전화해 보니 임대인도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문제는 한 달 더 외면받게 되었다.

 꽤 중요한 계약 문제를 두 달이나 방치했다는 어떤 죄책감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몇 가지를 실수하게 되었다. 새로 계약서를 꾸미는 대신 기존 계약서에 단서 조항을 달아 서명을 하는 방법을 택한 점은 실수 축에도 못 든다. 사실 더는 주거지 증명을 위해 계약서를 제출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 실수는 재계약을 하면서도 작년 입주 두 달 만에 부러진 발코니 손잡이와 제 역할을 못 하는 욕실 급탕기 수리를 미리 요청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두 문제는, 나의 일상에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재앙에 가까운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문제 해결과 함께 시작하게 된 셈이다.

 새로 갱신한 계약서를 가져다주기로 약속한 날 관리인의 전화가 종일 꺼져있음을 확인했을 때, 아파트 관리실 기술자가 급탕기에 사망 판정을 내렸을 때, 나는 이 문제가 비로소 '삶이 안정화되었고 더 이상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을 깨뜨렸다는 점을 지각하게 되었다. 잠시라도 나를 가만두지 않는 구질한 문제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보도블록을 덮고 있는 배설물을, 운이 나쁘면 한 번쯤 밟을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그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특히 급탕기의 부재는 혹독한 겨울 아침 매일 출근할 때마다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므로 어떻게든 이른 시일 내에 해결을 봐야 했다.

 약속한 날로부터 일주일 뒤, 관리인이 집을 방문했다. 한 주간 몇 차례 다짐을 받은 효과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 사람들이 흔히 약속하더라도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 지키지 않는다. 협의나, 최소한 통보도 하지 않는다. 어쨌든 관리인은 추가 계약서 사본을 건네주곤 네 시간에 걸쳐 문고리를 아무렇게나 수리했다. 분명 자기 마음대로 아무 문고리나 가져다 붙여 놓고 나중에 보증금에서 까겠다고 주장할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일들에 진저리가 난지 오래이므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 제한다면 제하면 되는 것이다. 급탕기 문제도, 그냥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쓰고 있는 급탕기는 수리공이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멀쩡하다. 다만 다소 작은 크기에 따라 한 번에 가용한 온수의 양이 제한적이고, 거기에 고질적인 수압 문제가 더해지면서 불편했다. 실상은 그랬다. 나는 재계약을 맞아 이걸 좀 더 큰 걸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멀쩡한 걸 바꾸려고 했냐면 그건 아니고 고장난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몇 번인가 겨울을 나야 할 텐데, 그렇다면 내가 직접 새것을 사서 직접 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언쟁에 지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찝찝함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집 문제가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