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의 방 dearest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이틀 전 충동적으로 오픽 시험에 응시했다. 지난 주말, 나는 두 차례 토익 스피킹 시험을 치뤘고, 이걸로 지긋지긋한 영어 말하기 를 끝장내고 싶었지만, 바람과는 달리 결과가 퍽 부정적일 것으로 예상되어 며칠간 신경질이 나던 참이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충동적으로 신청했다. 토스가 안되면 오픽이라도 따서 어쨌거나 영어 말하기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미였다. 토익 스피킹 시험에서 목표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이번 상반기 전형 준비차 쏟은 두 달간의 내 노력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것이므로, 본격적인 전형 전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택의 여지 없이 오픽을 치르고 긍정적인 결과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느긋하게 일어나 간밤에 작성한 자기소개 원고를 읽으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예상 결과는,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평가 기준에 대해 이야기할만큼,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덜컥 응시한 탓이다. 그러나 40분간,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끊임 없이 단어를 배열하고 쏟아냈기 때문에 기분은 마냥 홀가분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저명한 TV 프로그램에서 광고하는 것을 보고 두 차례 기웃거린 이력이 있으나 밀려든 인파에 매번 실패. 오늘도 끼니 때가 꽤 지난 시각이었음에도 식당은 만원이었다. 조금 기다린 후 안내 받아 밥을 먹었다. 천천히 들었음에도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여전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기온이 다소 쌀쌀했으나 거리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그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뭔가 더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근처 국박을 방문하게 되었다.

 국박 가는 일은 참 드문 일이다. 가는 길에 지난번에 칠면조 그림을 보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 일 년 조금 못 된 과거일 것이다. 정확하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언제, 어떻게, 왜 방문했는지 세세히 기억했을 터인데 최근 내 인생기획의 변화 하에서 이런 세부적인 정보는 모조리 쓸모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나는 예의 코스를 따라 중국 서화, 일본 서화 순서대로 돌았다. 홍매 그림을 보니 아직 봄이라기엔 이르지만 벌써 봄이된 듯 흥이 났다. 남들보다 먼저 담은 봄맞이. 즐거웠다.

 서화가 끝났으니 그 다음은 불교조각 특별 전시실 차례다. 국립 중앙박물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특별 전시실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몇 종의 철불과 석불을 모아 둔 전시실을 돌아 금동불상 전시실을 거치면, 아주 작고 조용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은 방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에는 6개월에 한 번씩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이 번갈아가며 전시된다. 평일 오후 시간이었기에, 회랑을 따라 드문드문 한두 명의 관람객이 느긋하게 유물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인적이 드물었는데, 한 평 남짓한 특별 전시실에는 열 명 이상의 관람객이 빼곡히 들어 직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얼핏 들으니 직원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83호 금동 반가사유상에 새겨진 옷 주름의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기술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러 간 것은 아니었으므로 황망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전시실 바깥으로 나오면서 나는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처음 내 눈으로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 명성과 특별 전시실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비롯된 감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그 조각상을 본 순간, 석굴암 본존을 보았을 때처럼 '아름답다'고 밖에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감상을 받았던 것이다.

 돌아오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83호 불상은 내가 지난 일 년간, 특별 전시실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던 매 순간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각 화풍의 특징이나 준법과 같은 기본 지식에 관해 까맣게 잊은 것, 마루야마 오쿄와 오가타 고린의 이름을 잊고 지낸 것처럼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가 몸담았던 세계와 동떨어져 지냈다. 벽면 한 켠에 소개된 불상 수인 설명서를 읽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덧붙였다. 이 상황에 문제가 있다면, 나는 나의 세계를 벗어나려 했되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동안, 한심한 말들을 입에 담으면서도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노력의 이음동의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절대 내가 입에 담았던 그런 식으로 사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없는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전시실을 나와 계단을 따라 출구로 향하면서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