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주말 아침 daily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며칠 전 예매를 해 두었다. 도로가 번잡해지기 전에 길을 나서기로 정하고, 근처에 문을 연 카페를 찾아뒀는데, 막상 근처에 가니 영업 시간이 아직 멀었다. 구글 맵 믿고 다니다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전에는 그런 사실이 주변에 알려져, 네이버 맵 쓰라고 핀잔을 들은 일도 있었다. 어쨌거나 첫 번째 계획이 그렇게 무너지자, 김이 빠져 그냥 예매를 취소하고 스타벅스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주차 자리가 하나 생겨, 내가 옳은 선택을 한듯해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앉아있다 보니, 그래도 주말 계획이라고 세워놓은 건데, 싶어, 다른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예매했다. 다이어리를 쓰고, 책을 두 페이지 정도 들춰보다가, 이제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인가, 싶어 목적지 정보를 찾다 보니, 관람객 주차 요금 2천 원. 뭐야. 도심에 있는 극장도 아닌데 뭔데. 그래서 나는 두 번째로 예매를 취소했고, 스타벅스에 좀 더 눌러붙어 있기로 결정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변덕스럽다. 아무렴 어때. 내 계획이고, 내 주말인데.


초여름날 daily

 을씨년한 한 주를 보내고, 새로 맞은 한 주의 시작은 무덥다. 5월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평정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꾸만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목표를 잃은 상태라 그런지, 그게 따지고 보면 낭비는 아니지, 이런 생각도 든다. 어쨌든, 초여름이다. 새로운 계절이 왔다. 바깥은 부쩍 밝아졌다. 내리쬐는 햇발 아래서 두 눈이 건조해짐을 느낄 때. 사람들은 계절이 바뀌면 그것을 생각하며 삶을 조금씩 바꾼다.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거나, 교외에 나가, 바뀐 자연을 눈에 담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 어쩔줄 모르는 나는, 기껏해야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며, 예전에 하던 일들을 한다. 오래 전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고, 옛날에 몰두했던 생각들에 빠진다. 그렇게, 나는 결코 유익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잡지를 읽는 시간 daily

 어지간히 바쁘고, 적당히 불쾌한 하루가 끝나간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 조금만 있으면 퇴근이다. 남은 시간 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기는 부담스러워, 책상 위에 쌓인 잡지 한 권을 꺼냈다. 3월 호다. 거기에는 최근에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국문학과에 진학하기로 했다는, 젊은 시인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송승환과 김현 시인을 읽은 후 시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는 고백. 그 인터뷰는, 문어뿐 아니라 구어에도 사유를 담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는 내용으로 끝맺음이 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생각이네.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재미있는 생각을 접하면, 무척 흥미롭다. 젊은 나이에 등단한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나는 집에 가서 일기를 써야지. 짧은 생각을 남기고 나니, 시간은 6시 29분이 되었다. 곧 업무 종료를 알리는 음악이 나올 것이다.

이우환의 편지 scraps

 박명자 사장님,

 정성화선생 개인전은 대단히 평이 좋은 가운데 끝났습니다. 제가 봐도 작품이 무르익은 감이 있어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동경도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는데 이것도 좀 과할 정도로 평이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단히 훌륭한 전람회여서 일본 작가들이 질투하게 생겼더군요.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쪼록 박사장님께서도 여러가지 고충이 많으시겠지만 일본화랑들에 못지 않을뿐아니라 세계에 자랑할만한 굉장한 화랑으로 꾸려가시기 빕니다. 매마른 나라이나마 미술에서만은 정말 풍요한 세계를 열도록 노력해야지요. 저도 열심히 작품 공부 하겠습니다.

1983. 6. 24 이우환 드림

갤러리현대, <현대 HYUNDAI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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